2013년 5월 15일 수요일

프리미어리그 픽 제공

올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우승은 맨유로 결정이 되었다

작년 맨시티의 우승으로 체면을 구긴 맨유는 올해 드디어

왕좌를 되찾으면서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박지성의 합류로 한국인들의 관심을 받던 퀸즈파크레인저스는

2부로 강등을 당하면서 안타까움을 사게되었다.

이제 박지성의 선택은  퀸즈파크레인저스에 잔류를 하는것이냐 아니면

새로운팀으로 이적을 하느냐의 선택만이 남아있다..

아무래도 이제는 더이상 박지성을 프리미어리그에서 볼수는 없을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이 남는다

해외축구리그 세리에 A


4부로 구성된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 가운데 1부리그를 가리킨다. 대중적인 인기와 선수들의 실력, 연봉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갖추어 프로축구의 '꿈의 무대'라고 일컬어진다. 명문 클럽이 많고 클럽 간의 평준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20개 소속 클럽이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클럽당 38경기를 치르며, 승리하면 3점, 비기면 1점, 지면 0점을 주어 총점이 가장 높은 클럽이 우승하게 된다. 정규 시즌이 끝나면 1부리그 하위 4개 클럽과 2부리그 상위 4개 클럽이 서로 자리를 바꾼다. 보통 8월에 시작하여 다음해 5월까지 열리며, 모든 경기를 일요일에 거행하고 주요한 한 경기만 선정하여 야간 경기로 치른다.

소속 클럽 수는 1952년부터 1967년까지 18개 클럽, 1967년부터 1988년까지 16개 클럽, 1988년에서 2004년까지 18개 클럼, 2004년 이후에는 20개 클럽이 소속되어 있다. 리그 자체가 이탈리아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으며 최우량주로 꼽히는데, 소속 클럽들은 TV중계권료와 입장료, 캐릭터 상품 판매, 각 프로팀이 운영하는 스포츠클럽 수입, 음식 판매 등으로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클럽들은 매년 거금을 투자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 리그들과는 달리 축구 복권인 토토칼초(Toto Calcio)을 발행하여 수입을 올리고 있다.
세리에 A 최다 우승팀인 유벤투스 FC와 함께 AC 밀란, 인터 밀란을 3강으로 꼽았으나 유벤투스 FC는 승부조작 사건으로 2006년 7월에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최근에는 SS 라치오, 파르마 AC, AC 피오렌티나 등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밀라노를 연고지로 하는 인터 밀란과 AC 밀란, 로마를 연고지로 하는 AS 로마와 SS 라치오처럼 연고지가 같은 두 팀이 경기를 하는 '더비'가 유명한데, 각 팀을 응원하는 관중들끼리 심하게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는 크게 1부리그인 세리에 A, 2부리그인 세리에 B, 3부리그인 세리에 C1, 4부리그인 세리에 C2가 있다.

축구의 정식명칭


축구의 정식 명칭은 어소시에이션풋볼이다. 그래서 흔히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association’의 ‘soc’를 빼내어 ‘사커(soccer)’라고 부르며, 풋볼이라고도 한다. 골을 지키는 키퍼는 손과 팔 등 전신을 사용할 수 있다.
스피드와 변화가 격심한 템포로 행해지기 때문에 심장이나 폐의 기능을 높이고, 신체의 접촉이나 태클이 허용되므로 용기와 결단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팀플레이로 진행되므로 개인의 능력과 함께 팀의 조직력과 단결력이 요구된다.

관련이미지 (2)

[출처] 축구 | 두산백과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의 프로축구는 1983년 2개 프로팀(유공·할렐루야)과 3개 실업팀(대우·국민은행·포항제철)으로 세미프로인 수퍼리그로 시작하였다. 1984년 대우 로얄즈·포항제철 2개 실업팀이 프로로 전환하고 현대 호랑이, 럭키금성 황소가 창단하면서 6개 프로팀과 2개 실업팀(국민은행, 한일은행)이 경기를 치뤘다. 이후 1989년 일화 천마에 이어 1994년 전북 다이노스·전남 드래곤즈, 1995년 수원 삼성, 1996년 대전 시티즌이 창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축구 리그로 자리를 잡았다.

1996년 기존의 지역 연고제를 보완한 완전 지역 연고지 제도를 시행하여 팀명을 부산 대우, 전남 드래곤즈,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 전북 현대, 대전 시티즌, 성남 일화, 안양 LG, 부천 SK로 변경하였다. 2002년 대구 FC와 광주 상무가 창단한 데 이어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였고, 안양 LG가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 FC 서울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5년 경남 FC가 창단하였고, 부천 SK가 연고지를 제주도로 옮겨 제주 유나이티드 FC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8년 12월에는 강원도를 연고지로 하는 강원FC가 15번째 구단으로 창단하여 2009년 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였다. 2010년 12월에는 16번째로 광주FC가 창단하였다. 시민과 기업, 광주시가 함께 운영하는 시민 구단 형태로 2011년 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였다. 

경기운영은 16개 팀이 정규리그인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눠 경기를 펼치며, 상위 1위와 2위 팀들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우승팀을 가린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31 축구회관 5층에 있다.

일본 프로 야구(일본어: 日本プロ野球,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NPB)


독립 리그 [편집]

2004년에 발생한 "프로 야구 재편 문제"와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현재의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의 탄생 영향이 일어나면서 전국에 '독립 리그 구상' 열풍이 불어왔다. 그 후에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처럼 실현된 리그가 있는 반면에 자금문제 같은 문제들로 실현되지 못한 리그 들도 있다.
리그 소속 선수는 지금까지 사회인, 아마추어 등의 대우를 받아 왔었다. 그러나, 2009년에 일본 야구 연맹의 선수 등록 규약 개정으로 NPB와 같이 프로선수로서 대우받게되었지만. NPB의 드래프트 지명대상 대우는 이전과 같다.
독립리그 선수들도 NPB와 같이 프로계약으로 구단으로 부터 연봉을 받고있지만, 액수는 NPB와 비교시 적다. 그래서 오프 시즌에 부업을 인정하는 리그도 있다.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편집]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四国・九州アイランドリーグplus)는 5개 구단에 의해 구성된다.
2004년의 창설 최초의 명칭은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였다. 시코쿠 지방 4개 현에서 각 1개 구단이 가입해 2005년 시즌을 개최했다. 2007년 12월 후쿠오카 나가사키의 규슈지방의 2개 구단이 신규가입 함에 따라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라는 명칭으로 개칭했다.따라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6개 구단으로 공식경기를 치렀다. 후쿠오카 레드 워블러스는 경영난으로 2009년부터 리그 참가를 중지해서 2010년에 5개 구단으로 개최했고 후쿠오카의 사무소는 남아있어서 "준가입 구단"으로 2011년 시즌의 복귀를 목표한다고 했으나 2010년 10월 익년 시즌 복귀를 보류한다고 발표한 바있다. 그리고 나가사키 세인트는 2010년 시즌으로 해산이 정해졌다. 2011년 시즌부터 중지된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에서 혼슈의 미에 스리 애로스가 가입했다. 이에 따라 리그 명칭 변경이 다시 협의되어,2011년 1월 27일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로 이름을 변경했다.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편집]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ベースボール・チャレンジ・リーグ, 약칭 BC 리그)는 이하 6개 구단에 의해 구성된다.
2006년 창설 당시 명칭은 "호쿠신에쓰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北信越ベースボール・チャレンジ・リーグ)"에서 니가타・시나노・토야마・이시카와의 4개 구단이 가입해서 2007년부터 시즌을 개최했다. 2007년 11월 군마・후쿠이의 2개 구단이 가입함에 따라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했다. 2008년 시즌부터 6개 구단(2지구제)로 공식경기를 치르고 있다.

간사이 독립 리그 [편집]

간사이 독립 리그(関西独立リーグ)는 이하 4개 구단으로 구성된다.
2009년 시즌부터 개최했다. 오사카 엑스포 세븐티스(大阪エキスポセブンティーズ)와 미에 스리 에로우스가 가입할 예정이었지만, 모두 독자 리그를 결성할 방침으로 변경했다. 원년에 참가한 오사카 골드 빌리케인즈(大阪ゴールドビリケーンズ)는 2009년 시즌 종료 후 탈퇴해서 2010년 시즌부터 한국 선수들이 만든 간코쿠 해치(韓国ヘチ, 구 코리아 해치)가 가입했다. 2011년 부터는 오사카 호크스 드림(大阪ホークスドリーム)이 가입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 [편집]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는 이하 2개 구단으로 구성된다.
2010년 시즌부터 개최했다. "미에 스리 에로우스"는 당초에 간사이 독립 리그에 가입할 예정이었지만, 간사이 독립 리그의 기존구단과의 선수급여 수준이나 리그운영 방침과 관련해서 의견과 이념이 다르다고 여겨서 2009년 10월 간사이 독립 리그에서 탈퇴하고 독자 리그를 결성하게 되었다. 10월 13일에 새 리그의 명칭을 "재팬 퓨처 리그"로 발표했고 동년 12월 1일에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로 개칭했다. 그리고 "오사카 골든 빌리케인즈"도 2009년 10월에 간사이 독립 리그에서 탈퇴해서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에 참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와 교류전을 추가해서 리그를 펼쳤다. 하지만 오사카 골든 빌리케인즈 선수의 불상사로 인해 스폰서가 철회하는 등 경영문제가 생겨서 2010년 9월에 2011년 리그를 쉬기로 결정했다.

메이저리그(MLB) 소개

미국에서 야구는 19세기 중엽 무렵 전국 각지로 퍼지게 되었으며, 1869년 최초의 프로구단이 창단되었다. 이후 1872년 최초의 메이저리그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이 설립되었으나 곧 해체되었고, 1876년 내셔널리그가, 1901년 아메리칸리그가 탄생하여 오늘날꽈 같은 양대 리그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 최초의 프로야구팀은 '레드 스타킹스'

미국의 프로야구는 1869년 최초의 프로구단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가 창단되면서 시작되었다. 

미국 최초 프로야구팀은 1866년 해리 라이트가 아마추어선수들로 조직한 신시내티市의 '레드 스타킹스' 클럽이다. 레드 스타킹스는 창단 후 2년 동안 무패 행진으로 명예와 부를 얻게 되자, 1869년 공식적인 프로야구단으로 출발하였다. 


■ 최초의 메이저리그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레드 스타킹스의 창단 이후 많은 아마추어팀들이 프로팀으로 전향하였고, 1871년 최초의 프로야구연맹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National Association: 전국 직업야구선수 연합)'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보스턴 레드 스타킹스의 4연속 우승 및 특정 팀 연패, 리그를 주도할 만한 인물부재, 선수들의 무절제한 생활, 경기장의 도박장화, 선수들의 잦은 이적 등이 원인이 되어 5년도 못 가서 깨지고 말았다.


■ 1876년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NL) 시작

그리고 1876년 시카고, 신시내티, 세이트루이스, 루이빌, 뉴욕, 하트포드,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8개 도시 프로야구단의 모임인 '내셔널프로야구 클럽협회'가 창설되고, '내셔널리그'가 시작되었다. 내셔널리그의 첫 게임은 1876년 4월 22일 <보스턴 : 필라델피아> 전이었다.

내셔널리그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자 아메리칸어소시에이션, 노스웨스턴리그, 유니온어소시에이션, 플레이어스리그 등의 새로운 리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그는 내셔널리그와의 힘겨루기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았다.


■ 1901년 아메리칸리그(American League:AL) 탄생

1901년에 이르자 오늘날 메이저리그 양대 산맥의 하나인 아메리칸리그가 탄생하였다.

당신 신시내티 레즈 감독이었던 찰스 코미스키와 기자 출신 반 존슨이 마이너리그급으로 운영되던 웨스턴리그의 구단주들을 설득시켜 8개 팀을 내셔널리그의 본거지인동부의 대도시로 진출시켜 아메리칸리그를 만들었다. 아메리칸리그는 돈공세를 퍼부어 내셔널리그의 우수선수들을 대거 트레이드해왔다.

스타급선수들을 영입해온 아메리칸리그는 순식간에 인기를 얻었고 8개의 아메리칸리그팀과 8개의 내셔널리그팀, 이렇게 최초의 양대리그가 시작되었다. 


■ 1903년 최초의 월드시리즈

1903년에는 양리그의 우승팀간에 월드시리즈가 처음으로 벌어졌다.

최초의 월드 시리즈는 1903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피츠버그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인 보스턴의 경기. 피츠버그가 보스턴에게 5승 3패로 졌다.

당시 월드시리즈는 명문화되어있지 않아 1904년에는 월드시리즈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1905년부터 월드시리즈를 규약에 명문화시켰다. 

월드시리즈의 도입으로 야구는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굳히며, 전국민적인 열광과 관심을 모았다. 


■ 1933년 올스타게임

올스타게임은 1933년 7월 6일 시카고 코미스키 파크에서 처음 열렸다. 

올스타 게임은 "시카고 트리뷴"지의 스포츠 담당기자 아치 워드의 제안에 따라 탄생했다. 그래서 올스타 MVP에 주는 상을 "아치 워드 어워드"라고 하다가 70년부터 "커미셔너 트로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85년부터 다시 "워드 메모리얼 어워드"로 환원시켰다. 

올스타 게임은 팬투표와 감독추천으로 선발된 최고의 실력과 인기를 얻고 있는 선수만이 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