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편집]팀 창단과 발전(1908–1952)
인테르는 1908년 3월 9일에 AC 밀란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이탈리아인과 영국인만을 받는 AC 밀란의 정책에 반대하여 모든 외국인들에게 개방되어있는 클럽을 만들고자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국제’란 뜻의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짓는다. 이 때 인테르를 만든 사람들은 클럽의 로고를 만든 지오르지오 무기아니와 보사르드, 라나, 베르톨로니, 데 올마, 엔리코 힌테르만, 아르투로 힌테르만, 카를로 힌테르만, 피에르토 델로노, 휴고, 한스 리에트만, 보에켈, 마네르, 위프, 카를로 아르두시이다.
1910년에 첫 번째 스쿠데토를 땄으며, 그리고 1920년에 두 번째 스쿠데토를 딴다. 비르질리오 포사티가 인테르가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였을 때의 주장이자 감독이었으며,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전쟁에서 사망하였다. 1922년에는 C.C.I.의 세리에 A B조에서 단지 11점만을 획득하여 최하위 순위를 기록하였다. 각 조의 최하위 팀은 강등당해야 되었다. 그러나 다시 리그가 합쳐지면서 인테르와 라 가제타 델로 스포츠의 편집장인 콜롬보가 FIGC에게 세리에 B는 재정에 해로우므로 다음 해에도 세리에 A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FIGC는 이를 인정하여 인테르가 1923년에 세리에 A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은 1928년에는 강제로 밀라네세 우니오네와 합병되었으며 이름도 암브로시아나 SS 밀라노로 바뀌었다.[4] 이 당시에 그들은 하얀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셔츠를 입었다. 이 디자인은 4세기부터 밀라노의 후원자였던 암브로세 성자의 깃발에서 유래된 밀라노의 깃발과 군대의 옷에서 따왔다. 새 회장이 된 오레스테 시모노티는 1929년에 AS 암브로시아나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하였으나, 서포터들은 계속해서 클럽을 “인테르”로 불렀으며 그리고 1931년 새로운 회장 포조니는 주주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름을 AS 암브로시아나 인테르로 다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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