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4일 수요일

인터밀란의 역사


역사

[편집]팀 창단과 발전(1908–1952)

세리에 A 1909-10,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의 사진
인테르는 1908년 3월 9일에 AC 밀란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이탈리아인과 영국인만을 받는 AC 밀란의 정책에 반대하여 모든 외국인들에게 개방되어있는 클럽을 만들고자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국제’란 뜻의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짓는다. 이 때 인테르를 만든 사람들은 클럽의 로고를 만든 지오르지오 무기아니와 보사르드, 라나, 베르톨로니, 데 올마, 엔리코 힌테르만, 아르투로 힌테르만, 카를로 힌테르만, 피에르토 델로노, 휴고, 한스 리에트만, 보에켈, 마네르, 위프, 카를로 아르두시이다.
1910년에 첫 번째 스쿠데토를 땄으며, 그리고 1920년에 두 번째 스쿠데토를 딴다. 비르질리오 포사티가 인테르가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였을 때의 주장이자 감독이었으며,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전쟁에서 사망하였다. 1922년에는 C.C.I.의 세리에 A B조에서 단지 11점만을 획득하여 최하위 순위를 기록하였다. 각 조의 최하위 팀은 강등당해야 되었다. 그러나 다시 리그가 합쳐지면서 인테르와 라 가제타 델로 스포츠의 편집장인 콜롬보가 FIGC에게 세리에 B는 재정에 해로우므로 다음 해에도 세리에 A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FIGC는 이를 인정하여 인테르가 1923년에 세리에 A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은 1928년에는 강제로 밀라네세 우니오네와 합병되었으며 이름도 암브로시아나 SS 밀라노로 바뀌었다.[4] 이 당시에 그들은 하얀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셔츠를 입었다. 이 디자인은 4세기부터 밀라노의 후원자였던 암브로세 성자의 깃발에서 유래된 밀라노의 깃발과 군대의 옷에서 따왔다. 새 회장이 된 오레스테 시모노티는 1929년에 AS 암브로시아나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하였으나, 서포터들은 계속해서 클럽을 “인테르”로 불렀으며 그리고 1931년 새로운 회장 포조니는 주주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름을 AS 암브로시아나 인테르로 다시 바꾼다.
주세페 메아차의 활약으로 1929-301937-381939-40을 우승하고, 1938-39 시즌에 팀 역사상 첫 번째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하였다. 1940년에는 주세페 메아차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5번째 리그 우승을 기록한다. 이러한 주세페 메아차의 공을 기리어 그의 이름은 산 시로 경기장의 공식 이름으로 남아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클럽은 원래의 이름이었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바꾸고 이후에도 계속 이 이름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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