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4일 수요일

라 그란데 인테르


라 그란데 인테르

1964-65 시즌의 인테르나치오날레 선수단
유러피언컵 1964-65시즌 결승전 선발 라인업. vs SL 벤피카
유러피언컵 1963-64시즌 결승전 선발 라인업. vs 레알 마드리드 CF
전쟁 후에 인테르나치오날레는 1953년, 54년에 연속으로 스쿠데토를 따낸다. 이 타이틀 이후에 인테르는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 중 하나인 라 그란데 인테르, 위대한 인테르로 이름붙인 시대가 찾아온다. 이 기간 동안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하에, 인테르는 3개의 스쿠데토를 따낸다.(1963, 1965, 1966) 이 10년 간 가장 중요한 것은 1964년과 1965년 연속으로 유로피언 컵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첫 번째 우승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따내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은 그들의 홈 경기장에서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였던 SL 벤피카를 꺾으면서 연속 우승을 하였다. 1966-67 시즌에도 인테르는 결승까지 올라왔으나 리스본에서 셀틱 FC에게 2-1로 패배하였다.

[편집]라 그란데 인테르 이후의 시기

황금기였던 1960년대를 지난 후, 인테르는 1971년에 11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했고, 1980년에 12번째 스쿠데토를 따냈다. 또한 1972년에 5년만에 유러피언컵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AFC 아약스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또한 인테르는 1977-1978년과 1981-82년에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였다.
독일 듀오 안드레아스 브레메와 로타어 마테우스아르헨티나인 라몬 디아스의 활약으로 인테르는 1989년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하에서 스쿠데토를 따낸다. 여기에 브레메, 마테우스의 대표팀 동료인 위르겐 클린스만이 합류하면서 수페르코파나 이탈리아나를 우승하였지만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방어하는데는 실패하였다.

[편집]힘겨운 시간(1990-2004)

1990년에는 클럽의 침체기였다. 라이벌인 AC 밀란과 유벤투스 FC가 리그와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음에 반해, 인테르는 뒤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가장 최악의 시즌은 1993-94으로 13위를 기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991년, 1994년, 1998년 UEFA 컵 우승을 하면서 유럽에서의 약간의 성공을 얻었다.
마시모 모라티가 에르네스토 펠레그리니로부터 1995년에 인테르를 인수하면서, 인테르는 더 큰 성공을 하기 위하여 호나우두와 크리스티안 비에리에르난 크레스포와 같은 유명 선수들을 데려온다. 이 때 당시 인테르는 두 번이나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을 깼는데, 1997년 195만 유로로 FC 바르셀로나로부터 영입해온 호나우두와 1999년에 315만 유로로SS 라치오로부터 영입한 크리스티안 비에리이다. 그러나 1990년대는 계속되는 침체기였으며, 인테르는 이 기간 동안 스쿠데토를 따내는데 실패하였다. 인테르의 팬들에게는 이 끔찍한 기간 동안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매우 어려웠으며 이는 회장과 감독, 그리고 몇몇 선수들에게 싸늘한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인테르의 구단주였던 마시모 모라티는 팬을 위한 목표로 매우 사랑받던 루이지 시모니가 1998년에 이탈리아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 전에 해고시켰다. 1998-99 시즌에는 인테르는 어떤 유럽 대회에 출전하는데 실패하였다.
1990-00 시즌에는 마시모 모라티는 큰 기회를 만들었는데, 일단 다시 유명 선수들과 계약을 하였다. 인테르의 큰 성공 중 하나는 전 유벤투스 FC 감독이었던 마르첼로 리피와 계약을 한 것이다. 많은 팬들과 언론들이 보기에 인테르는 마침내 승리의 공식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였다. 또한 안제로 페루치와 프랑스의 전설적 선수인 로랑 블랑과 계약하였으며 전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블라디미르 유고비치와 함께하게 되었다. 인테르는 또한 유럽 대회의 방해도 없어서 많은 이점을 않고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SS 라치오에게 코파 이탈리아와 세리에 A에서 패배하면서 또다시 스쿠데토를 따내는 것에 실패하였다.
이 시즌 이후에 더 큰 재앙이 찾아왔는데, 인테르는 수페르코파나 이탈리아에서 SS 라치오를 상대로 비록 4-3으로 졌지만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고 로비 킨과 계약을 하였다. 대체로 그들은 시즌 초반 좋은 시작을 하였다. 그들에게 찾아온 또다른 골칫거리는 그들이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스웨덴의 헬싱보리 IF에게 패배하여 본선에 출전하지 못한 것이었다.알바로 레코바가 몇 분을 남겨놓고 동점을 만들 수 있는 페널티 킥을 얻어냈지만 스벤 안데르손에 의해 막히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 세리에 A 경기에서 레지나 칼초에게 패배하면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된 인테르는 마르첼로 리피를 해고시킨다. 이 기간을 지나면서 인테르는 그들의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의 조롱을 받았다. 당시의 AC 밀란은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테르는 더비 라이벌에 의하여 끝나지 않는 패배를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00-01 시즌에 그들의 홈에서 밀란에게 6-0 대패를 당하는데, 이것은 인테르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점수 차로 홈에서 진 경기이다. 마르코 타르델리가 리피를 대신하였지만 좋은 결과를 내는 것에 실패하였고, 결국 인테르의 팬들에게 타르델리는 이 경기로만 기억되게 되었다. 크리스티안 비에리나 파비오 칸나바로와 같은 인테르의 선수들도 이 기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식당이 AC 밀란에게 대패한 이후로 공격을 당하였다. 물론 이반 코르도바가 CA 산로렌소로부터 이적하였지만, 그는 다음 해부터 인테르에서 뛸 수 있었다.
인테르 팬들의 항의는 이 기간을 지나면서 경기장의 현수막에까지 그들의 반달리즘이 나왔는데 이는 선수들에게 확실하게 항의하는 방법이었다. 또 다른 경우로 팬들은 쿠르바 노르드를 준비하여 경기장의 한 쪽을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비우게 하였다. 인테르는 이 기간 동안 종종 대회의 우승후보로 여겨졌는데 그 결과로 AC 밀란이 인테르를 상대로 할 때 나오는 응원가에서도 나타나있다. 이 응원가는 이탈리아 어로 7월과 8월이란 뜻인 “루글리오 오고스토”란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는 여름 기간이 되면 언론이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우승후보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약속이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UEFA 컵 4강뿐만 아니라 스쿠데토를 따내기 까지 45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승점 1점을 앞서고 있는 채로 세리에 A 1위를 기록하면서 SS 라치오의 홈인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마지막 경기를 하였는데, 이 경기를 지면 유벤투스 FC나 AS 로마에게 우승을 내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결과로 몇몇 라치오의 팬들은 이 경기 동안 인테르를 응원하였는데 이는 인테르가 이겨 그들의 최대 라이벌인 로마가 우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인테르는 24분만에 2-1로 앞서갔으나, 라치오가 전반전 인저리 타임에서 동점을 만들었고 후반전에 2골을 더 넣으면서 어웨이 경기에서 우디네세 칼초에 2-0으로 이긴 유벤투스가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이 2002년 5월 5일의 경기는 여전히 인테르를 괴롭히고 있다.
2002-03 시즌에 세리에 A 2위란 꽤 괜찮은 성적과 2003년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밀란을 만났었다. 비록 1-1로 비기면서 원정골 원칙에 의하여 인테르가 졌지만, 이 경기는 똑같은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이것은 실망스러웠던 점이지만 그들은 마침내 제대로 된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시 마시모 모라티의 성급함이 또 다시 화를 불렀는데, 에르난 크레스포를 단지 한 시즌만에 팔아버리고, 엑토르 쿠페르 역시 몇 경기 많에 해고시켰다. 알베르토 자케로니가 그 자리를 대체하였지만, 오래된 인테르의 팬들은 그 역시 이넽르가 4-2로 SS 라치오에게 패배하였을 때의 라치오 감독이었기에 회의적으로 보았다. 자케로니는 비록 유벤투스 FC와의 맞대결에서 토리노에서 3-1, 밀라노에서 3-2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겼지만, 아무것도 특별한 무언가를 얻어내지 못 하였다. 그들은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3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파르마 FC에 단지 승점 1점 차로 앞서면서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 출전 할 수 있었다. 2003-04 시즌의 인테르의 단 하나의 수확은 데얀 스탄코비치와 아드리아누가 2004년 1월에 영입되었으며, 이들은 에르난 크레스포와 클라렌서 세이도르프의 공백을 매워줄 수 있었다.

[편집]부활

2005년 6월 15일, 인테르는 코파 이탈리아에서 로마를 상대로 종합 전적 3-0(밀라노에서 1-0, 로마에서 2-0)으로 이기면서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였으며, 같은 해 8월 20일에는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당시 2004-05 세리에 A를 우승한 유벤투스 FC(칼치오폴리 이전)를 상대로 연장전 끝에 1-0의 승리를 거두었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의 우승은 1989년 이후 처음이었으며 공교롭게도 인테르가 스쿠데토를 마지막으로 차지했던 해와 똑같다. 2006년 5월 11일, 인테르는 또다시 로마를 상대로 종합 전적 4-1(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1-1, 주세페 메아차에서 3-1)의 승리를 거두며 코파 이탈리아 정상에 오른다.
인테르는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유벤투스 FC와 AC 밀란이 포인트를 잃게 됨에 따라 2005-06 세리에A 정상에 오르게 된다. 2006년 7월 14일, 이탈리아 축구 협회의 항소 위원회는유벤투스 FCSS 라치오ACF 피오렌티나레지나 칼초AC 밀란에게 승부조작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관여된 다섯 클럽에게 벌을 내렸다. 그 결과로 유벤투스는 그들 역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B로 강등되었으며, 도시 라이벌인 밀란은 8점이 차감되면서 인테르는 2006-07 세리에 A 시즌의 강력한 우승후보가 되었다.
이 시즌 동안 인테르는 2006년 9월 25일 홈에서 AS 리보르노 칼초에게 4-1로 이기고 2007년 2월 28일 홈에서 우디네세 칼초에게 1-1로 비길 때까지 세리에 A에서 17연승을 하였다. 2007년 2월 25일에 칼초 카타니아에게 5-2로 이기면서 15연승을 한 것은 소위 빅5(이탈리아스페인독일프랑스잉글랜드)의 FC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 CF와 동일한 기록이었다. 오직 SL 벤피카(29연승), 셀틱 FC(25연승), PSV 에인트호번(22연승)만이 유럽 축구 리그에서 이 5개월 동안의 질주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이다. 인테르는 강등권 팀인 레지나와 슬럼프를 겪고 있던 US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 각각 0-0, 2-2로 비기면서 하향세를 타는 듯하였으나, 팔레르모와의 경기는 전반전에 2-0으로 지고 있던 것을 후반전에 다시 따라잡은 것이다. 인테르는 AS 로마의 늦은 두 골로 홈에서 3-1로 패배하기 까지 거의 1년 내내 무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2007년 4월 22일, 인테르는 아르테미오 프란키 경기장에서 AC 시에나에게 2-1로 이기면서 세리에 A 2연패를 하였다. 이탈리아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하는데 이 대회에서 인테르의 수비수인 마르코 마테라치도 두 골을 넣으면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인테르는 2007-08 시즌 세리에 A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둘 다 승리하면서 대회를 시작하였다. 인테르는 리그를 좋게 시작하면서 리그 순위권에 자리 잡았으며, 챔피언스리그 또한 16강전까지는 무난하게 갔다. 그러나 2월 19일 16강전에서 리버풀 FC에게 종합전적 2-0의 패배를 당하면서 당시 인테르의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만치니의 미래가 불확실해졌으며, 그리고 리그에서도 이기는 데 실패를 하였다.(UC 삼프도리아와 그들의 리그 최대 라이벌인 AS 로마와 비기고 원정에서 SSC 나폴리에게 첫 번째 패배를 당했다.) 리버풀에 의해 챔피언스리그 탈락을 하면서 만치니는 감독직을 사퇴한다고 말했으나 이틀 뒤에 마음을 바꾸면서 계속 남게 된다.
인테르는 스쿠데토 경쟁에서 좋은 결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기회가 2번 있었지만,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에게 홈에서 패배하고 AC 시에나와 비기면서 마지막 경기까지 AS 로마와 단지 승점 1점 차이 밖에 나지 않게 되었다. 인테르는 무릎 부상에서 회복중이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파르마 FC를 상대로 두 골을 넣으면서 가까스로 우승할 수 있었다.
이 승리 이후, 5월 29일 인테르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에게 패배한 것을 이유로 만치니를 해고 시킨다.[5] 그리고 6월 2일, 인테르는 그들의 공식 홈페이지에 FC 포르투와 첼시 FC의 감독이었던 조제 모리뉴를 새 감독으로, 주세페 바레시를 수석 코치로 임명하였다. 이 때 당시 모리뉴는 세리에 A 2008-09의 유일한 외국인 코치였다.[6] 모리뉴는 이 시즌의 여름 이적기간 동안 세 명의 선수를 영입하는 만시니[7]와 설리 알리 문타리[8]히카르도 콰레스마[9]이다. 모리뉴의 부임 첫 기간 동안 네라주리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우승을 하고 세리에 A 2008-09에서 우승을 하면서 리그 4연패를 하였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패배하면서 3년 연속 16강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리그에서 4연패를 차지한 것은 유벤투스 FC와 토리노 FC 이후 60년 만의 일이다.

[편집]트레블

UEFA 챔피언스리그 2009-10 결승전 선발 명단. vs FC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9-10에서 더더욱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는데, 모리뉴의 친정팀인 첼시 FC를 종합전적 3-1로 꺾으면서 3년 만에 8강에 올랐다. 그리고 CSKA 모스크바를 종합전적 2-0으로 꺾으면서 4강에 오른다.[10] 인테르는 지난해 우승팀이었던 FC 바르셀로나를 1차전 홈에서 3-1로 이겼다. 2차전에서는 1-0으로 인테르가 패배하였지만 합계 전적 3-2로 꺾으면서 그들 역사상 다섯 번째로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한다. 인테르는 디에고 밀리토의 두 골로 FC 바이에른 뮌헨을 이기면서 유럽의 챔피언이 된다.[11] 인테르는 또한 2점 차로 AS 로마를 밀어내면서 세리에 A 2009-10를 우승하였고, 코파 이탈리아도 결승전에서 로마를 1-0으로 꺾으면서 우승을 하게 된다.[12]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한 시즌에 모두 이루어내면서 인테르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게 된다.
이 시즌의 활약으로 인테르는 2009-10 UEFA 올해의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선수상까지 휩쓸게 되었다.

[편집]이후부터 현재까지

FIFA 클럽 월드컵 2010 결승전 선발 명단. vs TP 마젬베
그러나 주제 모리뉴는 레알 마드리드 CF와 2010년 5월 28일에 계약을 하면서 더 이상 인테르는 그와 함께하지 못 했다.[13]그리고 이자리를 라파엘 베니테스가 2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맡게 된다. 그리고 2010년 수페르코파나 이탈리아에서 AS 로마를 3-1로 이기면서 4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된다. 그리고 2010년 12월,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 TP 마젬베를 3-0으로 꺽으면서 5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5관왕을 달성하게 된다. 이는 2001년의 리버풀 FC, 2006년의 알아흘리, 그리고 6관왕을 달성한 2009년의 FC 바르셀로나가 있다. 그렇지만 그는 리그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같은 해 12월 23일 구단은 베니테스와 상호 해지에 합의한다.[14] 그리고 다음날 그 자리를 AC 밀란의 감독이기도 하였던 레오나르두 아라우주를 임명한다.[15]그리고 이 시기에 잠파올로 파치니[16]안드레아 라노키아[17]후신 하르자[18]나가토모 유토[19]가 영입되었다. 레오나르두는 노력하여 순위를 다시 따라잡는데 성공하였지만 결국 밀란에 이어 2위를 함으로써 인테르의 세리에 A 연패 행진은 5연패에서 끝나게 된다. 그리고 레오나르두가 파리 생제르맹 FC의 단장으로 떠나면서[20] 인테르는 다음 감독으로 잔 피에로 가스페리니를 임명한다.[21]또한 디에고 포를란과 유명 선수를 영입하였다. 그렇지만 가스페리니는 인테르에서 1무 4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 하면서 경질되고 말았다.[22]그리고 그 후임으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되었다.[23] 라니에리는 AC 밀란 전에서 1-0 승리를 거두는 등 7연승을 거두며 다시 인테르를 앞으로 올라가게 하는 듯 하였으나, 이후 7경기 무승을 거두면서 부진에 빠졌다. 결국 라이벌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2-0으로 패배해 데르비 디탈리아에서 홈, 원정 경기 모두 패배를 하면서 라니에리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인테르 프리마베라의 감독으로 U-19 챔피언스리그(NextGen) 우승을 한 안드레아 스트라마키오니를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AC 밀란과의 데르비 델라 마돈니아 경기에서 4-2로 이기면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결국 인테르는 6위로 마감하면서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였다. 인테르는 전체적으로 연령층이 높은 선수층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트레블의 영웅들을 이적시켰다. 먼저 겨울 이적 시장에서 티아구 모타를 파리 생제르망 FC로 이적시켰다. 그리고 여름 이적 시장에선 루시우를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어주었다. 또한 팀의 든든한 오른쪽 풀백이었던 마이콩을 맨체스터 시티 FC로, 주전 골키퍼였던 줄리우 세자르를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 보내야했다. 이미 임대로 SSC 나폴리에서 뛰고 있던 고란 판데프도 완전 이적 옵션으로 넘겼다. 그리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 한 디에고 포를란과 잠파올로 파치니를 각각 SC 인테르나시오나우와 AC 밀란으로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얼굴들 역시 인테르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미 임대로 뛰고 있던 프레디 구아린을 영입하고, 로드리고 팔라시오 역시 영입하였다. 미드필더 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 가비 무딩가이와 왈테르 가르가노가 영입되었으며, 주전 골키퍼의 빈자리는 사미르 한다노비치가 메웠으며 파치니와 맞교환되어 안토니오 카사노가 영입되었다. 또한 젊은 수비수 마티아스 실베스트레도 영입되었다. 이 선수들을 바탕으로 인테르는 2012년 8월 2일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와의 UEFA 유로파리그 원정 경기를 시작으로 리그에서 2012년 10월 7일 AC 밀란과의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이겼으며, 같은 해 11월 3일 유벤투스 FC와의 데르비 디탈리아 원정 경기에서도 3-1로 이기며 아탈란타 BC와의 원정 경기에서 3-2로 패할 때까지 원정 10연승을 달렸다.

[편집]또 다른 역사적 사실

인테르는 세리에 A에서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는 유일한 팀이다. AC 밀란이 1980년 토토네로 스캔들과 2년 뒤까지 2번, 유벤투스 FC가 칼치오폴리 스캔들로 한 번 강등되었지만 아직 인테르는 강등되지 않았다.
2010년 트레블을 이루어낸 마시모 모라티의 아버지 안젤로 모라티 역시 인테르의 황금기었던 1960년대의 구단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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